롱혼 원명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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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것이 나의 일이다.

창덕궁 행각 아래 앉아 햇살을 피한다. 오후 3시, 낙선재에서 도슨트가 예정되어 있다. 'K-헤르티지 아트, 이음의 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회를 보기 위해 조금 일찍 아내와 창덕궁에 들어왔다. 시간도 때울 겸 산책하듯 궁궐을 둘러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되었다. 낙선재로 향한다. 금박, 칠장, 소목장등 전통 공예 장인들의 작품이 궁궐 곳곳에 놓여있다. 도슨트를 따라다니며 작가의 작품과 그것이 이곳에 전시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보았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작품마다 달라 보인다. 한 점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 한 가지 기술을 갈고닦아 온 사람..

삶의 가치는 생각보다, 한 걸음에서 자란다

'삶의 가치는 보는 만큼, 아는 만큼 자란다.'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가끔 모임에서 마주친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보였다.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고,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흔히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30년 전부터 우리나라 곳곳을 탐구하듯 누볐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려 70여 개국을 다니며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지역을 찿아다니는 호기심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다양한 건축물에 눈을떴고, 이내 대자연의 푸른 풍광에 매료되었으며, 이제는 붉은 바위사막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에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의 관심과 시야를 계속 넓혀온 셈이다. 어제 도심 속 호젓한 곳..

카테고리 없음 2026.09.04

은퇴 후에도 초심은 필요하다

어제 오후, 삶의 파고에 맞서고 있는 친구의 연락이 왔다.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몇 번의 만남을 미뤘던 터라, 아내의 양해로 가던 길 멈추고 어렵게 시간을 맞췄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강렬했다.그는 일을 하면서 삶의 절박함을 넘어 공포까지 느끼는 각오를 살고 있다고 했다. 반짝이는 눈빛에서 그의 절실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이루고 나면 그때부터는 성취감과 책임감으로 살아가겠다는 희망의 말도 덧붙였다. 무심히 듣다가 친구의 대단한 각오와 실천에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지금의 이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붙잡은 그 마음을 끝까지 놓지 마."그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늘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런가? 60대 나이에 절박함을 가지고 지치지 않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

카테고리 없음 2026.09.03

사는 게 내 일이고, 내 재주다

9월이 되었다.뜨거웠던 여름 처럼 달궈진 나의 하루도 바삐 넘어간다. 은퇴자인 내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건강한 이기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에너지가 충분히 채워져야 비로소 타인에게도 진정한 선의를 베풀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과 몸의 상태를 다듬는다. 운동하고, 걷고, 명상하고, 글을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충전한다. 나를 챙기는 것이 단순히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건강하고 평온해야 가족에게도 따뜻할 수 있고, 주변 사람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 나를 잘 돌보는 것이 결국 세상을 향한 선의의 출발점이다. 특히 60대 삶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제 우연히 몽테뉴에 관한 글과 마주하면서 더 큰확신을 갖게 되었다. 어제 오후. 서재에서 가..

카테고리 없음 2026.09.01

나를 잘 대접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제 일요일 아침, 아내가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좋~지' 그런데 30분 걸려 의왕까지 가잔다. '버터밀크팬트리'라는 브런치집. 팬케이크가 맛있단다. 예전 같으면 갖가지 핑계를 대며 피했을 것이다.'꼭 가야 해?, 가까운 곳도 많은데 ㅠ'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갑시다! ~^^.' 좁은 골목 작은 매장이라 빈자리가 거의 없다. 겨우 입구 쪽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한 마음이 든다. 왠지 맛나 보일 것 같다. 이 복잡함에 매력이 있었다. 알록달록 음식이 나왔다. 커피가 맛났다. 브런치와 함께 하니 더 맛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직원들의 친절한 미소에 더욱 편안하다. 휴일 아침이 참 고급졌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사람은 여유가 없어서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실행하지..

카테고리 없음 2026.08.31

평범하게 하루를 사는것을 절대 지겨워마라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다."변함없는 평범한 하루가 지루한 것은 그 하루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늘 다른 곳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태 역시 끊임없이 다른것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도 했다. 주말이라 헬스장은 9시부터 문을 연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운동을 시작하는 날이라 아침 산책을 나섰다. 비가 지나간 거리는 깨끗했고, 적당히 따사로운 햇살과 신선한 바람이 어우러져 차분했다.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걷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일상이 이렇게 행복했나?' 카페거리 한복판에 놓인 그늘막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무언가 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쫓겼다.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았고,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신경 썼다. 더 많이 해야 잘 사는..

카테고리 없음 2026.08.29

삶도 뱅크시(BANKSY) 처럼

기존의 관습을 깨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림이 있다. BANKSY(뱅크시)의 그림이다. 미리 파놓은 도안을 이용해 스텐실 기법으로 그리는 그의 작품은 그림이라기보다는 거리의 낙서와 포스터, 그 어디쯤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데 눈길이 오래 머문다. 어제 아내와 '더현대 서울'에서 하고 있는 뱅크시 작품 전시회를 다녀왔다. 해설을 곁들인 오디오 가이드까지 신청했더니 작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 등 그의 작품은 단순하다. 그런데 강렬하다. 몇 개의 선과 색, 그리고 짧은 메시지 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단순한데 많은 것을 말한다. 그것이 더 좋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뭔가를 설명하려면 장황스럽다. 거기에 자랑하고 싶은 경우 더욱 혼란스럽다. 사실 이제..

카테고리 없음 2026.08.28

은퇴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아침이 상쾌하다.오늘은 헬스장으로 곧장 달려가기보다 주변 산책을 했다. '아침 힐링 클래식'이라는 첼로와 오보에 연주를 들으며 한발, 한발 발끝의 감각을 느껴본다. 여유를 챙긴 아침은 늘 이렇게 길다. 어제는 예전 삼성 SDI 해외 건설팀에서 파트너로 일했던 신재영 씨를 만났다. 그도 이제 정년퇴직을 했단다.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이 가득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수십 년을 달려온 그가 이제는 회사라는 울타리 밖으로 밀려 나온 것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모습에서 낯선 머뭇거림이 보였다. 매일 출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집에 머물러야 하는 삶. 회사에서 익숙했던 역할과 관계가 사라지고 이제는 아내와 함께하는 일상이 중심이 된 삶. 나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아내 말 잘 들어" 농담 처..

카테고리 없음 2026.08.27

말보다 먼저 한 발 내딛는 삶

어제 아내는 생일 파티로 외출 중이다. 그러면 나는 가끔 특식을 먹는다. 아내가 금기하는 음식, 라면이다. 평소에는 참았지만 오늘은 마음껏 끓여 먹었다. 먹고 나니 소화도 시킬 겸 그동안 눈에 걸렸던 집안일을 하나씩 시작했다. 거실 이중창 유리를 닦고, 스레기봉투를 내다 버렸다. 로봇청소기도 돌리고, 걸레받이에 올라앉은 먼지들을 찾았다니며 닦았다. 하 하나를 하면 또 하나가 보인다. 생각날 때 해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오늘 할 일을 꽤 많이 한 것 같다. 겨우 몸을 진정시키고 서재에서 노트북을 들고나와 거실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내려다보는 창밖의 거리는 여전히 뜨거워 보인다. 양산으로 가린 그림자도 그리 오래 시원해 보이지 않는다. 횡단보도의 사람들은 햇빛 가리게 그늘로 숨어들었고, 질주를 ..

카테고리 없음 202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