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것인지 몽롱한 것인지 오후가 벅차다.
새벽 도착 비행기를 선택했으니 어느 정도는 각오했던 일이지만, 공항의 대기시간으로 마지막 날 늦은 오후 일정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풀려버린 듯하다. 오랜만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오붓하게 마카오. 홍콩을 다녀온 길이었다.
이번 여행은 유난히 특별했다.
5월 말의 뜨거운 열대 햇살 아래 한낮 외출이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 마카오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이 배탈이 나면서 여행 내내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덕분에 여행 일정이 엉키면서 마카오 대학 병원도 가보고, 함께 걷다가도 쉬어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상황이 오히려 좋은 시간이 되었다.
서로를 배려 하고 기다리며,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역지사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은퇴 후의 가족여행은 연습이 필요했다.
젊은 시절 출장이나 비즈니스 탐방처럼 효율과 성과를 따지는 여행이 아니라, 조급해하지 않기, 천천히 즐기기, 시간에 쫓기지 않기, 낯선 상황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같은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는 시간 말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내려놓는 자세였다.
배려를 전제로 한 느슨한 마음,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드는 여유를 반기는 태도, 어쩌면 그 '여유'야 말로 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주식 시장의 FOMO 열기로 사람들의 감정도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느꼈다. 냉정을 되찾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다.
마카오 구시가지 골목을 걷다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깨달았다. 행복은 결코 절대적인 환경이나 비교의 높낮이에서 오는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 이었다.
여유를 가지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