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독서에 참여 하면서 보니 모두들 왜들 이리 열심히들 할까?
고교동창 친구들, 어릴적 기억,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 라서 왜 그럴까 학창시절 동기들이란 묘하다. 얼굴들은 잘 몰라도 뭔가 통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명상을 하면서 3일차 후기로 어제 내가 카톡에 올린 글이다 >
명상을 해보니 좋은점이 있다. 그 준비단계가 즐겁다. TV, 핸드폰 모두 차단하고 나와 낯설은 나 단둘이 만날것을 기대하니 물한잔도 하며 설레이기도 하다. 오늘도 새벽에 자리잡고 눈감으니 10여분간을 숨박꼭질하듯 날뛰는 생각을 피해 다니다 조용히 나를 만나 비몽사몽 묘함 사이에 40분이 지나갔다. 누군가 그랬다. 생각과 마음이 가장 멀리 있다고 그걸 만나게 할려니 이리 힘든 모양이다. 오늘 명상중에는 아예 생각을 놔버렸다. 마음대로 떠돌아 다니다. 둘이 만나라고 편했다 ~
자주 하다보면 둘이 친해져 서로를 다독이겠지 생각과 마음과 행동까지 만나면 몰입으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진다던데 친구들 덕분에 그런 기회까지 올려나 기대해본다 ///
오늘 아침에 집중이 안되어 좀더 명상에 찿아보다 보니 생각은 안할 수록 좋고 마음을 생각과 멀리 두라고 한다. 이 기회에 좀더 깊이 빠져들고 싶다. 명상 공부와 실천을 계속 해야 겠구나
어제 오전에는 단톡방 SDI해외건설팀 모임에서 행복과 쾌락에 대해 이야기 하다. 안사장님께서 쾌락 지수표를 올리셨다. 쾌락지수1 적당한 취기 에서 부터 시작하여 쾌락지수150 마약 까지 나열 되어있는데 감동 20, 일의 성취감 45, 자신의 결과에 의한 뿌듯함, 믿음의 결실은 30 등으로 쾌락지수가 나오는데 의외가 여행이 55로 일반적인 항목중 제일 높게 나온다. 여행이 쾌락으로 이렇게 높다니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갸우뚱 하면서도 다행이다 싶다.
내년에 만60 회갑을 맞아 길을 찿아 혼자 여행을 하기로 이미 계획을 세워 놨기에 기왕이면 쾌락 지수 높은 여행에서 내 길을 찿아 본다니 잠시 흥분해 보면서 '타인의 기대 같은건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라는 Alfred Adler의 글귀를 떠오른다.
유대교 교리에도 내가 나를 위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다는 말인가? 즉 내가 주체가 되어 주도적으로 내 인생을 살으라 했다. 내가 앞으로 그렇게 살고자 한다.
만남 5 >
통화는 마쳤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근데 잘안다
마음이 만나니
더욱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