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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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잘못, 내 책임 입니다

원명호 2022. 6. 5. 10:02

일요일 오전 음악을 들으며 커피 마시다, 생뚱맞게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글을 쓰며 회개하고 있다.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내 잘못이고 내 책임입니다.

 

맹자의 ‘이루 편에 보면’  “남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  말이 나온다, 자기중심의 시각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헤아려 보라는 삶의 지혜를 말한다.

 

어둑어둑 무거운 걸음, 가벼운 걸음 뒤섞여 긴장된 가면을 벗어던진 민낯의 퇴근길 전봇대 모퉁이를 돌면 좁은 골목 작은 창 밖으로 큰소리가 넘어온다. 훈계하는 소리 같은데,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 아니, 화풀이를 쏟아낸다. 예전에 흔하게 보던 우리네 동네 모습들이다.

 

세월이 흘러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는데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겠나 하지만, 많다. 경중이야 있겠지 만은 어릴 적 보고자란 그리고 피해의식 속에 쓸데없는 자존심의 DNA가 늘 꿈틀대며 그들은 변변한 소통도 못하는 가슴으로 사회활동 하느라 웃으며 억누르며 참거라 고생들 한다. 가족들이 그런 그를 불쌍하다고 이해를 해주면 소위 봐줘 한번 통하면 그에겐 상식이 되고 난 이런 사람이야 라는 자존감에 우쭐하고 또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은 그걸 자랑이라고 떠든다.

 

반면, 내가 왜 이럴까 하며 문득 위험을 감지하여 이러지 말자며 튀어나오는 숨은 DNA를 억누르다 인문학적 소양에서 사회의 의문과 불만과 통찰력을 키워 어느 날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토해내는 울음으로 카타르시스의 변곡점을 거쳐 다양함을 인정하며 이해의 강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는 종교적을 만남을 통해, 스스로 공부를 통해, 최단단 소장님은 최면이라는 기법을 통해 다양하게 풀어 나가는 소통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 어느 외골수의 본인은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의한다 심지어 의사의 진단도 부정하며 스스로 진단까지 하기에 이르며 새로운 만남도 거부하며 혼자만의 신이 되어 자신을 이해 안 해주고 험담한다. 하여 배척하며 외골 수가 되어 자신 만의 세상에 빠진 사람으로 밖에서는 배려심 많은 사람, 착한 사람인데 집안에서 또는 관련된 친척에게는 절대자로 돌변하는 사람 지금은 그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 심지어 아내도 힘들게 하는 처가 친척이 있어 그를 보면서 문득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

 

어디서 부터온 것인지는 모르는 피해의식과 의타심 속에서 다행히 소위 조그만 경제권을 가졌다고 우기며 집안에서만 부리는 자존감이다.

 

그들은 온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을 자기가 만드는 것으로 까지 착각할 정도로 집안의 가족관계에서만 판단하고 가르쳐 든다, 식구들이야 습관적으로 복종하다 보니 이 시간을 모면하기 위해 한 귀로 듣고 흘리는 속고 속이는 일에 익숙해지다 보니 그들의 오판은 점점 확신 속에 진리가 되고 있다.

 

간혹 밖에서도 세상의 도덕적 가치는 모두 지키는 듯 온갖 예를 들어가며 침을 튀기며 자신을 설명하지만 정작 교통 신호위반이라도 걸리면 갖은 핑계를 대며 모면하려 하거나 합리화시키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사람이 애처로워 보일 때가 많다. 주변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르니 어쩌겠는가 타산지석으로 삼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떤 면에서 그러고 있을 수 있는지 모른다는 마음에 이 글을 쓰면서 자주 나를 뒤돌아 보고자 한다. 천천히 행동하며 매사 습관적으로 역지사지를 생각하며 행동하자.

 

내 잘못이다, 내 책임입니다

 

 

 

내 책임 >

 

베란다에

아내가 정성 들여 키우던 꽃

갑자기 시든다

 

초초하다

내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