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에 시달리다 잠시 시원해지는가 싶었더니 벌써 아침 산책에 찬기운이 돈다. 그래도 아직 반팔부터 찾는 것은 관성의 습관이고 계절의 바뀜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감각의 무딘 탓이다.
마침 월요일 교육인 '장애인 평생교육 전문가강사' 과정을 수강하면서 이날 느낀 것은 우리가 배려라 하면서 그들에게 손부터 내민다는 것은 너무 배려한다는 일방적인 행동이란 것. 그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 기다려 달라, 물어봐 달라는 것인데 도움주고 있다는 급한 마음에 그들의 손짓을 무시한 처사이다. 기다리면서 배려를 해도 늦지 않다. 마치 계절의 감각을 뒤늦게 찾는 것처럼 무딘 감성의 관성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페북에 '광희'라는 이 가 "우리가 영화를 보고 문학작품을 읽고 전시와 공연을 보는 모든 예술 향유의 목적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던데 나야말로 전시와 공연 등 예술의 향유를 자주 누려서 공감력 ‧ 상상력 ‧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인식 등을 높여 사람과 계절과 세월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끼며 세련되게, 연하게 나이 먹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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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 차를 받으러 간다. 지난주 금요일에서 지연되어 어제 보험과 차량번호등 딜러와 함께 사전 준비를 모두 마쳤다.
새 차의 새 기운으로 멋지게 다시한번 달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