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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열어준 해방구

원명호 2024. 5. 9. 05:52

어제 아버님을 뵙고 물치바다 PEI 카페에 앉아 구기구기 접혀 쫄아든 마음을 바다가 열어준 해방감에 맘껏 뛰어 내달리다 하얗게 씻겨 되돌아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일렁이지 말자고, 내버려 두면 알아서 고요해질 것에 금 긋지 말자고, 짜던 안 짜던 뭔 상관인가 내잔의 물은 여기 있는데 지나가는 구름을 잡으려 허우적 대던 심신은 오늘 수평선 회초리에 두드려 맞고 정신을 차렸다.
 
한 시간 여를 아내와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다. 오후가 훌쩍 넘어 집으로 올라왔다. 운전하느라 지쳤지만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온 친구를 뿌리치기에는 아직 체력과 관심이 남았다. 수원역 오래된 낡은 횟집에서 널브러진 세꼬시를 안주삼아 뭐라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냉큼 수긍할 수도 없는 말들이 오고 가고는 늘 그렇듯 각자 일어서 나선다. 버텨 이겨내야 한다. 서로를 보며 반성하고 현실을 달래야 한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다.
 
오늘은 아침 루틴을 마치면 판교에 아내와 함께 올라가서 아내는 만두 공부하러 가고 나는 카페에서 글을 만지작 거리며 한 낮을 보낼 것이고 내려오는 길에 아내 친구가 하는 카페에 들러 아내가 미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전하고 올 예정이다. 
 
 

 
 
신들의 운동회날 >
 
청군 백군 
팽팽한 줄다리기는
수평선 가로지르고
모래밭 관객은
파란 용솟음에 넋 잃고
두드리는 하얀 손짓에
마음을 담가 구름에 걸어 놓고는
잊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