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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운동 그리고 지금

원명호 2025. 4. 22. 09:32

종교를 믿는 이유가 내세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라고? 

운동하는 이유가 오래 살려고 한다고?

 

우리는 늘 저 언덕너머 무지개를 쫓아 살아오고 있다. 부자든 가난하든 아니면 지체가 높든 낮든 마음을 꽉 잡고 살지 않으면 어느새 허황된 무지개를 쫓아 애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뻔한 결과로 절망과 한탄으로 마감하지만 그래도 또 신기루가 보인다.  

 

우리가 습관처럼 말하고 있는 나중에, 다음은 있다 없다? 지금 아니면 단연코 없다.

종교를 믿는 것도 현실의 지금에서 좀 더 성숙한 인간으로 살기 위함이요 운동을 하는 것도 지금 하는 일에 전력을 다함이다.

지금. 무엇을 하든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을 귀하게 여기고 부여받은 삶에 충실한 것이며 절대 후회 없는 가치있는 일이다.

 

결혼 준비차 집에 온 딸은 매일 서울을 오르내리며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어쩌면 저렇게 힘이 날까? 

하지만 자세히 보면 힘이 넘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도 밤에 피곤해한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 충실하기 위한 자신의 가치관으로 무장된 삶이 그녀를 이끄는 것이고 그것이 치열한 미국에서 살아남은 비결이다.

 

그렇게 살기위해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기르고 정신을 붙잡기 위해 믿음을 갈구했던 것이었다. 

'너는 어쩌면 이렇게 체력이 좋냐, 피곤하지도 않니? 좀 쉬지,,' 오늘도 안쓰러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지만 그것보다. 지금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그녀의 가치관에 찬사를 보내며 본받을 일이다.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9시30분 오늘의 활력을 얻어 삶에 충실하기 위해해 운동하러 섹서스짐으로 일어서야겠다.

지금 이니까.